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다니자키 준이치로 (문단 편집) === 간사이 이주 이후 === 다니자키는 1923년 [[간토 대지진]]을 겪고 난 뒤, 지진을 두려워하여 일가족 모두와 함께 그때까지 지진에서 안전하다고 알려진 [[간사이]] 지방으로 이주하게 된다. 처음에는 [[교토]]에 있다가 나중에는 [[고베]]로 옮겨 거주하게 된다. 이후 다니자키는 도쿄로 돌아가는 일 없이 계속해서 간사이 지방에서 거주하게 된다. 간사이 지방 이주 직후 다니자키 초기 문학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치인의 사랑(痴人の愛)』이 1924년부터 연재되기 시작한다. 이 소설은 처제 세이코를 모델로 한 소녀 나오미를 맡아 기르면서 [[키잡|자신의 취향에 맞게 길러 이상적인 여인으로 삼으려 하던]] 주인공이, 나중에는 도리어 자신을 가지고 노는 나오미에게 휘둘리면서도 헤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그린 소설이다. 다니자키의 작품 세계는 『치인의 사랑(痴人の愛)』을 경계로 해서 서양의 미를 동경하던 것에서 점차 일본적인 소재와 전통미를 추구하는 것으로 바뀌어가게 된다. 1928년 연재하기 시작한『만지(卍)』와『여뀌 먹는 벌레(蓼喰ふ虫)』가 그것이다.『만지』는 [[레즈비언]] 관계를 중심으로 하여 얽히고 섥힌 연애관계를 다룬 소설인데, 모든 내용이 여주인공의 1인칭으로 서술되어 있는 가운데 [[교토벤]]을 유려하게 구사하였고, 간사이 지방 상류 사회의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다룬 점에서 그의 문학에서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1930년 아내 지요와 이혼한 다니자키는 1931년 후루카와 도미코(古川 丁未子)와 재혼하지만, 그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모리타 마쓰코(森田 松子)와의 관계가 깊어져서 도미코와 별거, 마쓰코와 동거하는 관계가 된다. 결국 다니자키는 1934년 도미코와 이혼하고, 1935년 마쓰코와 재혼하게 된다. 다니자키는 17살이나 어린 마쓰코를 숭배에 가까운 대상으로 생각할 정도였으며, 이러한 그의 여인숭배적인 생각은 『맹인 이야기(盲目物語)』, 『춘금초(春琴抄)』 등에서 잘 묘사된다. 이후 다니자키는 일본 전통 문화에 깊이 심취하게 되는데, 그가 『[[겐지 이야기]]』의 현대어역(譯)[* 겐지 이야기는 [[무라사키 시키부]]의 장편 대하소설로, 천 년 전 [[헤이안 시대]]의 작품이기 때문에 일본인이라도 고문을 깊게 공부하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문을 독해할 수 없다. 따라서 많은 현대어역이 나와 있으며, 이 중 한국에 번역된 [[김난주]] 역의 겐지 이야기는 세토우치 자쿠초(瀬戸内 寂聴)의 현대어역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작업을 시작한 것도 이 시기(1935년)의 일이다. 다니자키 역(譯) 겐지 이야기는 1939년 초판이 출간되었으며, 이후에도 새로 번역하고 여러 차례 다듬는 등 다니자키는 겐지 이야기에 많은 애착을 보였다. 1942년부터 다니자키는 『세설(細雪)』을 연재하기 시작하나, 이것이 '전시 시국에 맞지 않는 내용'이라 하여 군부로부터 발간을 정지당하게 된다. 이후 [[1944년]] 사가판(私家版) 즉 '''자비출판'''으로 상권을 찍어 친구와 지인들에게 배부하였지만 이것도 군부에 의해 금지당하게 되었고, 『세설』 전권이 완성된 것은 [[태평양 전쟁]]이 끝난 뒤인 1948년에야 가능했다.『세설』은 간사이 지방에 거주하는 상류층 네 자매의 일상을 담담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다니자키의 작품 중에서는 이례적으로 잔잔한 흐름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네 자매의 모델은 세 번째 아내인 마쓰코의 자매들이라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